대놓고 자랑해도 흉보지 않으실 거죠?
우리 동네는 '지정마을'이에요. '지정 마을회관'도 있어요. ('마을'이란 말, 참 정겨워요. 어디 아파트가 아니라 마을!) 이곳은 마을 어르신들이 소주도 한 잔씩 하시고 화투패도 돌리시고 뽕짝뽕짝 트로트에 몸을 흔들기도 하시는 경로당이기도 해요.
우리 동네는 번잡한 시내 중심에 위치한 곳은 아니지만 엄연히 '시내'예요. 그래도 시내라는 걸 잊기가 일쑤랍니다. 왜 그런지 제 얘기를 들어보시겠어요?
그전에 제가 살던 곳 얘기 먼저 해야겠네요. 저는요, 길도 더 넓고, 사람도 더 북적이고, 밤이면 네온사인 가득한 도시에서 살았어요.
이곳 순천으로 이사 왔을 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투덜댔어요.
'이 동네에는 집 앞에 체신국도 없네.' '관공서도 없네.' '길도 좁네.' '별다방은 바라지도 않아, 심지어 가까운 커피숍도 없네.' '걸어서 갈 수 있는 시립 도서관도 없네' '롯데리아가 없네' '결.정.적.으.로. 친.구.가. 없.어.'
그러고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불만들이었죠.
그런데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알게 됐어요. 고향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인정이 많은 분들을 알게 됐거든요.
오래된 기와집을 고쳐야 해서 당분간 지낼 곳이 없었는데, 부모님께 어느 동네분이 선뜻 마을 경로당 방을 쓰라고 말씀하셨대요. 타지에서 이사 온 저희에게요. 다행히 저희 집 아래채가 비어서 그곳에서 한 달 정도를 생활했지만,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그 마음만은 참 감사했어요.
대문을 나서는 순간,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교복을 입은 여드름 많은 학생, 꼬마애까지 인사를 건네더라고요. 새로 이사왔냐고요.
저는 말이에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맘을 열게 된 적이 드물었어요. 이렇게 쉽게 맘이 따뜻해진 적은 없었어요. 예전에는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거든요. 어쩌다가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받으면, 잔뜩 경계하며 긴장했어요. 이제는 어색한 표정을 풀고 먼저 인사 건네기도 해요. 이제는 기분좋게 실실 웃으며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게 됐어요. 대문을 나설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어떤 사람을 만날까 괜히 맘이 설레요.
멀리 나가야 시립 도서관이 있다고 투덜댔지만 저는, 버스를 타지 않고, 바로 집 앞에 있는 전문 대학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도서관에서 책 읽을 수 있고요, 풋풋하고 어린 대학생들을 매일 만날 수도 있어요.
남자 여자, 성별 가리지 않는 머리 자르는 우리 동네 미용실은 커트 비용이 오천원밖에 안 해요. 잘 풀리지 않는 뽀글뽀글 어르신들 파마는 만원, 어르신들 커트는 삼천원이에요. 어디 어디 많은 분점을 갖고 있는 숍의 디자이너 선생님들보다 솜씨가 좋게 느껴져요.
녹슬고 무거운 우리 집 대문이 열려 있으면, 동네 분이 오셔서, 텃밭을 잘 가꿨다는 칭찬을 하셔요. 아버지께서는, 퇴직하신, 하지만 여전히 '시청 국장 아저씨'로 불리는 이웃이 주신, 모과로 담은, 모과차를 내오세요. 아버지께서 쓴 붓글씨나 공들여 그리신 수묵화를 칭찬하시면 저희 아버지께서는 기분이 좋아지셔서 호탕하게 웃으세요. 목소리도 훨씬 더 커지세요. 전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죠.
아직까지도 좋은 점이 자꾸 자꾸 생겨요. 타인에게 관심도 갖게 되고 끊임없이 좋은 점을 찾게 돼요.
우리 동네여서 좋아요. 음식하면 남도 음식이라서, 가는 음식점마다 실망할 일이 드문 곳이서,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생태 도시 순천이라서, 연령대도 다양하게 모두 친구가 되어 주는 맘 따뜻하고 포근한 동네 이웃이 많은 '지정 마을'이라서 참 좋아요!
이 장소의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도사동 463-4 (
지도 보기)
주소의 정확도 : 정확도 보통 - 지도에서 그 근처를 찍었어요. 근처에서 조금만 찾으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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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시즌 2에서
바람물고기님이 작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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